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18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

200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차창밖, 풍경 빈곳 /정은기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어내는 호수와 <시골밥상>이니 <대청마루>니 하는 간판의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호 열..

2008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페루/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

2008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예의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