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차창밖, 풍경 빈곳 /정은기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어내는 호수와 <시골밥상>이니 <대청마루>니 하는 간판의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호 열..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경향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페루/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예의 /조연미 손바닥으로 찬찬히 방을 쓸어본다 어머니가 자식의 찬 바닥을 염려하듯 옆집 여자가 울던 새벽 고르지 못한 그녀의 마음자리에 귀 대고 바닥에 눕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물을 내리고 누군가는 목이 마른지 방문을 연다 무심무심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예의처럼 모르는 척 하는 ..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파문/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
2008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 시린, 푸른, 아린 가시들(좋은시) 2008.01.20